본문 바로가기
문학/독서록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by 롸 2021. 9. 11.
반응형

 

소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오로지 먹이만 찾아 다니는 평범한 보통 갈매기들과는 다르게 더 빠르고, 어려운 기술을 써가며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하는 갈매기였다.

 

이 이야기는 조나단이 앞의 이유로 인해 무리에서 쫓겨났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내용의 성장 소설이다.

 

조나단이 얻은 깨달음

 

조나단이 무리에서 쫓겨난 후 비행을 하다 늙어 죽을 때 쯤 되었을 때, 그는 천국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비행의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때 조나단은 천국의 갈매기 무리 촌장인 챙에게 비행을 배웠었다.

 

챙은 조나단과 함께 하는 마지막 비행에서 챙이 한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신념은 잊어버려! 나는데 필요한 건 신념이 아니라,
비행을 이해하는 것이었지. 이것도 똑같다네.

 

지금껏 조나단은 소설의 지문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 '내 삶의 의미는 비행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의미는 신념이 아니라 나는 것.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조나단은 이후 자신 생애의 최고의 비행을 선보였고, 무리에 인사를 한 뒤 다시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간다.

 

 

조나단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무리에서 쫓겨난 갈매기 플레처와 몇 마리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챙이 천국에 있는 갈매기 무리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나단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얻은 깨달음과 비행을 정성껏 가르친다.

 

플레처와 제자들은 제 2의 조나단, 제 3의 조나단이 되어 또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렇게 3대 제자들이 생겨나고 플레처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숨을 거둘 때 쯤, 이미 조나단은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가 되어 있었다.

 

근처 섬 어디를 가도 조나단을 본뜬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조나단의 '고위 제자'라 자칭하는 갈매기들은 사제 마냥 공물, 제물을 거두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다. 어리석은 제자들은 조나단의 비행을 이어 받기보다 조나단에 대해 알려고만 했고, 신앙심을 내세워 다른 갈매기들을 등쳐 먹었다.

 

과연 이들은 진정 조나단의 제자들일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불현듯 예수가 떠올랐다. 과거 종교 혁명으로 예수를 믿는 종교는 신교(크리스트교)와 구교(가톨릭교)로 나뉘어졌다. 종교 혁명의 계기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구교에서 돈을 받고 팔았던 면죄부(사두면 죽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였는데, 그것이 고위 제자들이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제자가 되려면 공물을 바쳐야 한다'라며 온갖 재물을 쌓았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위와 비슷한 사람들이나 일정한 패턴대로만 살아가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딱딱한 기계 같은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한심하고 따분한 갈매기들이었다.' 등의 지문에서 그러한 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조나단과 나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조나단, 플레처처럼 정해진 순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쫓는 특별한 갈매기일까? 아니면 무리의 다른 평범한 갈매기들처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 같은 갈매기일까?

 

난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내 또래들처럼 늦지 않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다 집에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하다 잔다. 물론 공부를 하는 틈틈히 좋아하는 그림이나 글도 지어보고, 게임 프로그래밍도 종종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난 딱히 '특별하다'라고 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는 확실히 조금 색다른 취미들이지만,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텐데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특별하다는 것은 상대적인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특별하다 여기는 것이 조나단에게 있어 '비행'과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것.

 

소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오로지 먹이만 찾아 다니는 평범한 보통 갈매기들과는 다르게 더 빠르고, 어려운 기술을 써가며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하는 갈매기였다.

 

이 이야기는 조나단이 앞의 이유로 인해 무리에서 쫓겨났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내용의 성장 소설이다.

 

조나단이 얻은 깨달음

 

조나단이 무리에서 쫓겨난 후 비행을 하다 늙어 죽을 때 쯤 되었을 때, 그는 천국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비행의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때 조나단은 천국의 갈매기 무리 촌장인 챙에게 비행을 배웠었다.

 

챙은 조나단과 함께 하는 마지막 비행에서 챙이 한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신념은 잊어버려! 나는데 필요한 건 신념이 아니라,
비행을 이해하는 것이었지. 이것도 똑같다네.

 

지금껏 조나단은 소설의 지문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 '내 삶의 의미는 비행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의미는 신념이 아니라 나는 것.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조나단은 이후 자신 생애의 최고의 비행을 선보였고, 무리에 인사를 한 뒤 다시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간다.

 

 

조나단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무리에서 쫓겨난 갈매기 플레처와 몇 마리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챙이 천국에 있는 갈매기 무리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나단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얻은 깨달음과 비행을 정성껏 가르친다.

 

플레처와 제자들은 제 2의 조나단, 제 3의 조나단이 되어 또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렇게 3대 제자들이 생겨나고 플레처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숨을 거둘 때 쯤, 이미 조나단은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가 되어 있었다.

 

근처 섬 어디를 가도 조나단을 본뜬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조나단의 '고위 제자'라 자칭하는 갈매기들은 사제 마냥 공물, 제물을 거두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다. 어리석은 제자들은 조나단의 비행을 이어 받기보다 조나단에 대해 알려고만 했고, 신앙심을 내세워 다른 갈매기들을 등쳐 먹었다.

 

과연 이들은 진정 조나단의 제자들일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불현듯 예수가 떠올랐다. 과거 종교 혁명으로 예수를 믿는 종교는 신교(크리스트교)와 구교(가톨릭교)로 나뉘어졌다. 종교 혁명의 계기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구교에서 돈을 받고 팔았던 면죄부(사두면 죽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였는데, 그것이 고위 제자들이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제자가 되려면 공물을 바쳐야 한다'라며 온갖 재물을 쌓았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위와 비슷한 사람들이나 일정한 패턴대로만 살아가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딱딱한 기계 같은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한심하고 따분한 갈매기들이었다.' 등의 지문에서 그러한 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조나단과 나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조나단, 플레처처럼 정해진 순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쫓는 특별한 갈매기일까? 아니면 무리의 다른 평범한 갈매기들처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 같은 갈매기일까?

 

난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내 또래들처럼 늦지 않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다 집에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하다 잔다. 물론 공부를 하는 틈틈히 좋아하는 그림이나 글도 지어보고, 게임 프로그래밍도 종종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난 딱히 '특별하다'라고 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는 확실히 조금 색다른 취미들이지만,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텐데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특별하다는 것은 상대적인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특별하다 여기는 것이 조나단에게 있어 '비행'과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것.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