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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3차 수정본)

by 롸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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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오로지 먹이만 찾아 다니는 평범한 보통 갈매기들과는 다르게 더 빠르게 날고, 어려운 기술을 배우며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하는 특별한 갈매기였다.

 

 

조나단이 무리에서 쫓겨난 후 비행을 하다 늙어 죽을 때 쯤 되었을 때였다. 그는 시간과 세월을 거스르는 천국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비행의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때 조나단은 천국의 갈매기 무리 촌장인 챙에게 비행을 배웠었다.

 

챙은 조나단과 함께 하는 마지막 비행에서 챙이 한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신념은 잊어버려!
나는데 필요한 건 신념이 아니라, 비행을 이해하는 것이었지.
이것도 똑같다네.

 

지금껏 조나단은 소설의 지문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 '내 삶의 의미는 비행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의미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이 옳다 믿는 것이 아니였다. 그 자체를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조나단은 그날 자신 생애의 최고의 비행을 선보였다. 그러곤 천국의 갈매기 무리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간다.

 

 

조나단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왔다. 이때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무리에서 쫓겨난 갈매기 플레처와 갈매기 몇 마리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조나단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얻은 깨달음과 비행을 정성껏 가르친다.

 

플레처와 제자들은 제 2의 조나단, 제 3의 조나단이 되어 또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렇게 조나단의 비행은 끊임 없이 전승되었다. 때문에 플레처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숨을 거둘 때 쯤, 이미 조나단은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가 되어 있었다.

 

근처 섬 어디를 가도 조나단을 본뜬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조나단의 '고위 제자'라 자칭하는 갈매기들은 사제 마냥 공물, 제물을 거두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다. 어리석은 제자들은 조나단의 비행을 이어 받기보다 조나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힘을 썼다. 고위 제자란 작자들은 신앙심을 내세워 다른 갈매기들을 등쳐 먹을 뿐이었다.

 

과연 이들은 진정 조나단의 제자들일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불현듯 예수가 떠올랐다. 과거 종교 혁명으로 예수를 믿는 종교는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졌었다. 종교 혁명의 계기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구교에서 돈을 받고 팔았던 면죄부 때문이었다. 그것이 고위 제자들이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제자가 되려면 공물을 바쳐야 한다'라며 온갖 재물을 쌓았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소설 속 '고위 제자' 같은 사람들이나, 일정한 패턴대로만 살아가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딱딱한 기계 같은 사람들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한심하고 따분한 갈매기들이었다.' 등의 지문에서 그러한 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조나단, 플레처처럼 정해진 순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쫓는 특별한 갈매기일까? 아니면 무리의 다른 평범한 갈매기들처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 같은 갈매기일까?

 

나는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또래들처럼 평일엔 학교에 간다. 주말엔 놀거나 집에서 쉰다. 그러면서도 늘 특별함을 쫓곤 했지만 언제나 내 삶은 객관적으로 봤을 땐 평범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특별하다는 것은 상대적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특별하다 여기는 것이 조나단에게 있어 '비행'과 비슷한 것이다.

 

나의 삶을 나 스스로 특별하다 생각하면 특별한 거고, 평범하다 생각하면 평범한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언제나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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